작품 설명
순간들: 1990년
독일이 재통일되던 날의 밤. 10월 2일에서 3일로 넘어갈 때 사람 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국회의사당과 브란덴부르크 문 앞으 로 모여들었다. 독일 국기가 게양되고, 국가가 울려 퍼졌으며, 불 꽃놀이가 밤하늘을 밝혔다. 환호하는 군중들, 환희에 도취되고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 바람에 펄럭이는 플래카드와 자욱한 연기, 행 복과 공감을 느끼는 한편 애수와 씁쓸함이 묻어나기도 하는 얼굴들의 이미지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그와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대와 바람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로스트는 직관적인 관찰자이다. 그는 황혼의 어스름이 퍼질 무렵 밖으로 나가서, 자신이 직접 보고 사람들의 동기를 이해하려 한다. 경직된 듯 앞을 보는 두 노부인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열심히 올려다보는 한 쌍의 남녀는 무엇에 감동했는가? 소년과 소녀는 어떤 미래를 함께 맞이하고 싶어하는가?
마치 무대에 선 것처럼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지만 사람들은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작가를 고스란히 관통하거나 스쳐 지나간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사진이 잘 나오기 를 바라는 것만 같다. 마치 사진 속 자신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 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분적으로 밝게 나와서 기묘하게 느껴지는 사진속장면은그자체로고립된사진적순간을제시한다.흥분으 로 고무된, 즉흥적이면서 공격적이기도 한 밤의 분위기와는 아무 런 상관도 없어 보인다. 멀리 떨어진 어둠의 꺼풀이 한 겹 벗겨지 면 환호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일 것도 같다.
몇 십 년이 지난 후 로스트는 자신을 위해 이이야기들을 새롭게 정리하고 표현하며 나열했다. 디테일과 얼굴에 초점을 맞춰 확대 한 이미지와 몽타주는 이제 낯설고도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자아낸 다. 횃불들, 나치식 경례를 하는 팔, 나부끼는 제국의 깃발 – 우리는 작가가 그날 밤 보고싶어 하지 않았던 것들을 본다. 드러나지 않은 순간들, 눈앞에 보이는 것 이상을 가리키는 암시와 상징들이 사진에 들어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전의 사건과 사연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 할 수도, 그래서 전과 다르게 그것을 이름 붙일 수도 있다. 사진의 현재와 미래는 바로 사진 그 자체의 과거다!
Franziska Schmidt (프란치스카 슈미트)